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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가작(김대용 힐라리오)
2018.11.13 480

가작 : 김대용 힐라리오(서울대교구, 양원성당)

 

'초남이 동정 부부'를 읽고

 

전부이신 하느님께 전부를내어드린 그들처럼 나 또한 하느님께 나의 전부를 내어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동정의 삶에 대해 그다지 깊은 생각을 가진 적도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으나, 그 당시 시대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한 순교자의 뛰어난 영성이 삶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점에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살아 온 모습을 돌아보게 되면서 크나큰 부끄러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나는 단 한번이라도 내 전부를 하느님께 내어드릴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말이다. 또한 동정이라는 삶 속에서 부모, 형제, 이웃들과 그렇게도 끈끈하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맺고 살며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며 사셨던 그 삶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분과 함께 살다 가신 분들이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왜 이 책이 추천도서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요즘 날로 늘어만 가는 각종 사회문제 중에서도 부녀자를 상대로 한 강력 혹은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성과 관련된 많은 사회문제, 사람 사이의 소외, 혹은 왕따 문제, 인륜을 저버리는 끔찍한 존속살인과 치정살인 등 예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윤리가 무너지고 경쟁에만 내몰려 나 혼자만 잘 살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 상황을 극복하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한 해결책이 아마도 이 책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의 영성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집안의 선조들을 통해, 태어난 이후에도 부모님을 통해 깊은 신앙심과 인성 교육을 철저히 받아 그들의 영성을 굳건히 키워나간 것이다. ‘에페소서의 내용이나 성경직해광익’, ‘성교절요’, ‘셩찰긔략등의 내용을 통해 부부간의 도리나 부모와 자녀 간의 마땅히 행해야 할 교육, 특히나 영적 교육에 대해 얼마나 큰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자란 동정부부의 영성이 어떠한지는 책에 기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너무나도 크고 아름답다. 그에 반해 나는 물론이요, 현 시대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육체적인 성장과 세속에서의 성공과 영광에만 관심을 둘 뿐 자녀의 영적인 성장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본인도 그러하지만, 자녀들 또한 이 세상에서의 풍요로움만 추구할 뿐 이 세상을 마친 후 가게 될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태평하고 무지한 것이다. 마치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든다라고 주장하는 교리에 빠져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고 수많은 순교 선조들이 삶으로 보여주셨듯이 천국에 드는 것은 믿음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믿음과 함께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모든 부모가 자녀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본인과 더불어 자녀의 영적인 성장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자녀교육을 할 때 아마도 많은 사회문제들이 사라지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동정부부의 영성과 삶을 살펴보자.

 동정부부의 집안을 보면서 참으로 놀란 것이 동정부부를 있게 한 선조들이 조선시대 후기를 이끌고 간 대단한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유중철 집안의 선조에는 고산 윤선도윤두서’, ‘정약전 형제’, ‘이승훈’, ‘윤지충’, ‘권상연등 당대의 큰 유학자나 초기 순교자들이 대거 포진해 계셨고, 이순이 집안 역시 성호 이익’, ‘지봉 이수광’, ‘권근’, ‘권철신’, ‘권일신등 유중철과 비슷한 집안 환경으로 시대를 이끌어간 이들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서 깊고 부유한 가문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고 자란 이들이 종교에 빠져 재산을 이웃에게 나눠주려 했고,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다는 것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삶이리라. 그러나 동정부부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늘 고백하고 있었다.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시작해 천지의 근본이치로 깨달아 자발적인 종교가 된 조선의 천주교는 정치 상황에 따라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만큼 사제를 모시기가 힘들었기에 평생 성사 한 번 받기가 죽는 것보다 힘들만큼의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제를 모시고 성사를 받는 그 은총을 너무나 큰 기쁨으로 여겨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할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믿음에 절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러한 시대상 속에서 동정부부가 동정으로 자신을 봉헌하기로 한 결심은 너무나도 결연하다. 특히나 첫 영성체 때 받은 은혜를 잃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겠다는 강한 결심에 따라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동정으로 살 결심을 한 것은 현재의 수도생활로 봉헌하겠다는 결심보다도 더 크게 보인다. ‘성경직해에서 영성체하면 그리스도는 천지 신인의 크신 주님이시기에 무소불능하시니 이 비천한 죄인과 더불어 합해 한 몸이 되신다.”라고 가르치는데, 나는 영성체를 통해 주님과 하나 됨을 느끼는가?’라는 자문에 끝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주님을 위한 어떠한 결심조차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척 어리석게 느껴질 뿐이다.

  늘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응답하기 위해서 하느님에 대한 순박한 사랑과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이기에 가능하다는 겸손한 마음을 통해 동정의 삶을 살아간 부부의 삶 또한 간단치 않았다. 젊은 남녀이기에 십여 차례 유혹에 흔들렸다는 고백에선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가슴이 시리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늘 기도드리고 감사하며, -동정이라는 구실로 혼자만의 수행에 빠진 것이 아니라- 부부 간에, 부모와 형제, 이웃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대하고 항상 치명할 수 있는 은혜를 바라면서 주님의 수난과 사랑에 온전히 의탁하고 성모님께 의지하며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면서 살아간 것이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는 누구보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아끼고 사랑했다. 서로를 존경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서로의 처지와 다른 이들의 처지를 성숙하게 받아들이면서 부부이자 오누이로 살아갔는데, 부부 간의 육체적 관계와 자녀의 출산, 양육만 없을 뿐이지 여느 부부들보다 더 깊고 성숙한 부부애를 표현하면서 살았다는 것은 훗날의 육체적인 순교보다 더 뛰어난 것이라는 표현에 크게 동감한다. 그리고 유중철 요한의 죽음을 안 이순이 루갈다가 슬퍼하기보다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순교했음에 커다란 안심과 기쁨을 표현하며 천국에서 다시 만나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부분에서는 차마 그들 사랑의 깊이를 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이순이 루갈다의 고백처럼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리라.

 현 시대의 시각으로 볼 때 그 어린 나이에 옥중에 갇혀서도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치명할 수 있게 됨에 늘 감사드리며, 가족들에게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을 권하는 이순이 루갈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목도하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신 성모님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 혹시 나만 그런 것인가 모르겠다. 그러한 영향을 받아서일 수도 있겠으나, 사촌지간인 조숙 베드로와 권천례 데레사 동정부부의 탄생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세계사에서도 동정부부의 존재는 약 2~3쌍의 부부 밖에 없는 아주 드문 삶이기에 쉽게 볼 수 없어서 이 작은 동양의 한 나라에서 동정부부가 2쌍이나 탄생되었다는 것에 대해 다블뤼 신부와 달레 신부가 극찬한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이 땅에 천주교가 뿌리내린 약 200여 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을 통해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편안한 종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나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내 목숨을 바쳐 치명당할 위험도 없고, 전 재산을 몰수당할 위험도 없다. 가족이나 친구를 빼앗길 슬픔도 없고, 직장이나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를 잃을 위험도 없다. 내가 선택한 종교 때문에 손해를 입을 위험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현재의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신자라고 자임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고 행복해 하지 않으며 사랑할 줄 모른다. 왠지 나만 사회에서 뒤쳐지는 것 같고, 나만 더 손해 보는 것 같아 내 것만 더 챙기려 하고 나만 더 잘 되길 바라는 기도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느님과 교회의 일보다는 나의 일을 더 우선시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취미생활에 더 시간을 쏟으며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만을 만나려 한다. 그러면서 신앙은 내가 조금 더 여유 있고 시간 날 때 가지겠다고 자꾸만 뒤로 미루는 것이 현재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앞에서 하느님을 증거 하기 위해 용감하게 목숨을 바친 순교 선조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그 어떤 세속적인 욕심도 가지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다 간 그 분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늘 그 분들을 기리고 그 분들의 정신과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직접 살아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순이 루갈다의 오빠 이경도 가롤로가 옥중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열애(熱愛)’ 두 글자를 보내며 주님을 열심히 사랑하시는 일 밖에는 주님과 통할 길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님을 열심히 사랑하는 일! 그것은 아마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 이웃과 모든 사람(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2018년 순교자성월을 우리 동정부부와 함께 보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큰 감사를 드린다. 매년 순교자성월을 보내면서, 간혹 순교성지에 방문할 생각만 했지 순교 성인의 삶이나 영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보내며 내 신심에 대해 우쭐해하기만 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내 신앙이었다. 방문해서 기도만 드려도 되는 것이 순교자성월을 보내는 신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 지금부터 내 영성에 대해 새로이 눈을 떠야겠다. 순교 성인의 삶과 영성을 내 안에 받아들여 나 또한 그 분들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분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시대의 징표를 읽어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감사드리며 순명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 갈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순이 루갈다의 편지글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항상 힘써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통회하여 간절히 구하면 은총을 주실 것이니, 잠시라도 방심하셨다면 크게 뉘우쳐 열심히 천주께 기도를 드리십시오.”(이순이 루갈다의 편지글 중 p. 144) -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가작(송채호 안드레아)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독후감 공모 가작(구선영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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