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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복음적 생활로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사도직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인 가정과 사회의 복음화에 이바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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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평신도주일 강론자료
2010-10-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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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2009년) 평신도주일 강론자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1. 찬미예수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우리 교회는 평신도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각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전국 단체들의 협의체인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아 ‘평신도의 날’을 지내며 활동하기 시작한 1968년부터 마흔 두 번째 ‘평신도주일’입니다. 해마다 평신도주일은 그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온 우리 자신의 삶을 좀 더 철저하게 성찰하며 앞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다짐하는 귀중한 은총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2. 올해는 특히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사제의 해’를 지내면서 우리 교회의 103위 순교자들의 시성 25주년을 경축하고 있는 만큼 오늘 평신도주일을 더욱 뜻있게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교회는 세계적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매우 충실히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를 이룬 가운데 “이 땅에 빛을” 비추어 백성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며 크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은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테르툴리아노)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어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3. 25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친히 한국을 찾아오시어 시성식을 집전하신 그 날의 감동을 되새기게 해주는 감사의 노래 “사은 찬미가(테 데움)”의 일화가 있습니다. 103위 성인 가운데 한 분인 마르티노 루카 위앵 민()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서 1866년 병인박해 때 충청도 보령 갈매못에서 30세의 나이로 순교했습니다. 위앵 신부의 순교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 고향 마을의 어머니는, 아들의 유품이 들어있는 장롱 문을 열고, 두 팔은 열 십()자로 포갠 다음, 무릎을 꿇고 ‘테 데움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찬미하나이다. 주 하느님. …거룩하시도다. 주 하느님!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무수한 예언자들의 대열, 눈부신 순교자들의 무리, 아버지를 높이 기리며 받드나이다.…”

4. 아들 신부가 죽음의 땅으로 가는 것을 극력 반대했으면서도, 순교했다는 그 한 마디 소식에 그저 하느님을 찬미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그런 어머니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교회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제의 해를 지내고 있는 우리는 사제들과 사제들의 부모님들에게, 특히 어머니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분들을 위해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선교사들과 이분들의 부모님들에게도 감사드리며 이 분들을 위해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5.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자발적인 교리 연구를 거쳐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영세 입교한 후 서울에서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고 모임을 가짐으로써 마침내 평신도들로 교회 공동체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목자 없이 출발한 신자 공동체는 잠시 동안 두 분의 중국인 신부를 모실 수 있었을 뿐, 1836년 모방 신부의 입국으로 시작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평신도들만의 공동체로서 신앙을 가꾸며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6. 주문모 신부 입국 초기에는 신부를 피신시키기 위해 신도들이 대신 붙잡혀 매 맞아 죽기까지 했으며, 교우들의 핍박을 덜어주기 위해 목자들이 스스로 관가를 찾아 자수하고 순교한 일도 있었습니다. 신자 공동체는 성사의 은총을 받으려는 열망으로 주교, 신부들을 영입해 들이기 위해 북경 삼천리 길을 걸어서 오가면서 교황님께, 또는 북경 주교님에게 눈물겨운 호소로써 다가갔고,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영입해온 선교사들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이 땅의 신자 공동체는 시련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세례 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했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7. 신앙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생활은 과연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입니까? 우리는 세례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로 새로 태어났고 그리스도의 지체요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거룩하게 살아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교회를 성장시키며 세상을 변화시켜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곧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공동 책임을 지며 서로 보완하여 교회와 세상을 복음화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8. 특히 가정과 직장을 비롯한 일상생활 현장은 평신도 고유의 영역이고 우리는 이러한 생활 현장, 곧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개선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아모 5, 24 참조)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바로 우리들 평신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는 희망과 사랑의 표지요 원천으로서 세상의 모든 분야에 현존하게 됩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7항)

9.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아 우리는 과연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혹시 교회의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면 자신의 생활 현장에서 다 해야 할 책임을 소홀히 해도 된다거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은 따로 떼어 놓아도 된다거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0. 우리는 과연 일상생활에서 의식주와 여가 생활, 에너지 소비, 자원 재활용, 등에서 그리스도인다운 검소한 생활 방식을 따르고 있는지, 한 마디로 우리 생활 방식은 과연 얼마나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며 복음적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1.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어 세상을 복음화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며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구원 받는 길입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순교 선열들이 목숨까지 내 놓으며 걸어간 길도 이러한 길이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하늘과 땅은 사라질 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하느님의 말씀”(마르 13,31 참조)을 따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간 바로 그러한 길이었습니다.

12.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말씀 한 구절을 말씀 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면, 온 세상에 불을 놓을 것입니다.”(서한 368 참조)

감사합니다.



제43회 평신도주일 강론자료
제41회 평신도주일 강론자료